직선들의 대한민국 - 건설 미학에 대한 진단과 처방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그가 새 책 두 권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한·중·일 3국간의 평화경제를 논한 『촌놈들의 제국주의』와 한국 사회의 생태적 전환 필요성을 역설한 『직선들의 대한민국』이 그것인데요. 오늘 이 자리에선 먼저 『직선들의 대한민국』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얼마 전에 폐기되었다곤 하지만 언제 또 물망에 오를지 모를 ‘대운하’ 문제와 직통하는 책이거든요.

이 책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경제성장주의와 거기에서 파생된 건설 미학을 이야기합니다. 불도저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한 사회에 대한 진단이며, 아파트와 고층 빌딩에 열광하는 사람들, ‘집’을 통해 재산을 불리려는 사람들, 역류하는 청계천 앞에서 감탄하는 사람들, 크고 높고 겉보기에만 깨끗하면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들, 힘없고 존재감 없는 것들은 깔려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방이기도 합니다. 잘 살아보자며 땅을 파헤치고 건물을 세우는 일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비경제적인가를 밝힐 뿐만 아니라 소설, 만화, 영화, 대중가요에 나타난 건설주의를 통해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미학적 자화상 또한 보여주죠.

저자는 현재를 진단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하는데요.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생태 미학입니다. 어렵고 생소하다구요? 간단하게 생각하시면 돼요. 부드러우면서도 합리적인 것, 옛 문화를 지키는 것, 오염된 것들을 복원하는 것 그리고 가난한 사람과 가난하지 않은 사람, 자연과 인간, 말하는 존재와 말하지 못하는 존재가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 그것이 한국 사회에 필요한 생태 미학이랍니다. 저자가 제시한 생태 미학의 방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생태 미학이 갔으면 하는 길 5가지

첫째, 지속 가능성(생태적 건전성). 녹색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요소를 감추는 속임수를 하지 않기.
둘째, 공동체. 부자들과 땅주인들의 공동체를 세상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공동체로 바꾸기.
셋째, 자치. 재벌, 검사, 판사, 대통령이 추구하는 건설 미학에 맞서 스스로 결정하기.
넷째, 소통. 아름다움이든 감동이든 땅값이 아닌 방식으로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고 이해하기.
다섯째, 다원성. 힘이 없어도, 땅이 없어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생태 미학이 가지 않았으면 하는 길 3가지

첫째, 우월적 계몽주의. 생태적 사유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바보이고 대중은 우매하다는 생각 하지 않기.
둘째, 선험적 패권주의. 다른 조직 혹은 다른 국가에 대해 우월적 위치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 하지 않기.
셋째, 근엄성. 자기만 세상을 다 이해한 듯이, 깊은 진리를 다 안다는 듯이 재미없게 굴지 않기.


서울 어느 동네의 골목길. 걷는 속도를 늦추고 주위를 살펴보게 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주거 공간’을 주제삼아 르포 작업을, 작업이라기보다 흉내를 내며 돌아다니던 한때가 떠올랐습니다. 몇 군데의 판자촌과 뉴타운 지구,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부지런히 드나들었었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다는 타워팰리스 근처를 얼쩡거리기도 했구요. 그러고 난 뒤에는 읽어주지 않을 걸 알면서 당시의 서울시장이자 지금의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어요. 무엇을 위한 개발주의냐고. 거기엔 ‘사람’이 없어서 싫다고. 그러니까 함께 극복해보자고. 생각해보면 지금도 유효한 말이군요.

편지엔 쓰지 않았지만 제 마음에 가장 선명하게 새겨진 것은, 실은 ‘빨래’랍니다. 어느 낮은 집을 무심히 지나치다 보았던 안마당 하얀 빨래, 바람의 방향에 따라 너울거리던 그 빨래는 누군가 “나 여기에 있다”고 하는 ‘삶의 외침’ 같았죠. 야트막한 지붕들, 굽이치던 골목들, 경계심 모르고 섞이던 강아지들. 제 마음을 가장 편하게 한 것도, 가장 불편하게 한 것도 모두 그런 것들이었구요. 너무 사소하다구요? 그렇다 해도 외면하진 말아주세요. 쉽게 밟히고 헐릴 법한 존재들에 마음 움직여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곧 저자가 말한 생태 미학이니까요.

강연을 들어본 적이 있어 하는 말인데, 저자는 공부 많이 한 사람으로서 가질 법한 먹물근성과는 거리가 먼 분이에요. 웃음이 날 만큼 어수룩한 말투로, 그러나 너무도 날카롭게, 재미나게 낮은 곳에 있는 핵심을 전달해요.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랍니다. 여기서의 생태 미학이 큰 규모에 수치화된 것이 아니라 삶의 애환과 맞닿은 풀뿌리학문일수밖에 없는 이유를 아시겠죠? 적절한 시점에 한국 패권주의 미학의 현주소와 생태 미학의 필요성을 조명해준 우석훈. 그의 또 다른 새 책이 궁금하네요. 벌써부터 이다음에 낼 책도 기다려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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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bandi | 2008/07/02 13:15 | 주목할 만한 신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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