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꿈을 물어본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자부해온 나였다. 훌쩍 떠나온 길만큼 어느 새 몸뚱이도 머리도 훌쩍 커버린 나지만, 이 질문 앞에서는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간의 발자취를 슬며시 더듬어보니 무언가 이상하다. 그동안 ‘내가 진정 이루고 싶었던 것’에 대한 열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부끄러웠던 기억이 없다. 좌절의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청춘을 청춘이라 자신 있게 외치지 못하고 결국 우물쭈물해버리고 만다.
이 책에서 다치바나 다카시는 11인의 청춘들을 차례로 조망해간다. 자전거 프레임 빌더, 원숭이 조련사, 사진작가, 소믈리에 등 다양한 청춘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기까지 겪은 좌절과 방황, 인고의 시간이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물론 심심치 않게 출간되는 여타 성공담 중 하나이지만, 이 책이 부각되는 이유는 그것이 ‘나 자신’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충 적당주의로 얼버무리고 살아가려는 나에게, 그들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면서, 나는 그저 파도치는 대로 이리저리 쓸려 다니며 사는 것이 제일이라 믿었다. 그것은 머나먼 항해를 조금 피곤하게 할지는 몰라도, 최소한 다치지는 않을 거란 이유에서였다. 괜한 물벼락을 맞느니 차라리 멀미하고 말 일이지 싶었다. 남들에게는 뒤쳐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튀지 않으려고 끓어오르는 피를 삭히고, 그렇게 적당히 타협하며 평균선만 막연히 넘나들었다. 아아, 나는 정말 멍텅구리 항해자였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비겁한 갈지자 선로인가. 최소한의 신기루도 갖지 못한 채 아무 목적 없이 표류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큰 회한은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할 때 생긴다고 했거늘.
어느 날, 거울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뱉는다.
“너, 나이만 먹었어.”
그것은 현실에 안착하고자 하는 심리, 좀 더 깊숙이 파고들자면 자아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혹자는 투쟁이 또 다른 분쟁을 야기한다고 했다.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불만, 무관심, 그로 인한 분규와 끊임없는 전쟁, 살인, 가난의 세습과 이기주의의 연결고리 따위가 이제는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주장한다. 애당초 이놈의 불행한 시대에 잉태된 자체가 잘못이며, 아무리 뭐가 이렇다 저렇다 해봤자 처절한 울부짖음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제 그만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무념무상, 안빈낙도함이 제일이라고. 역사 속 뜻있는 사람들이 속세를 초월하여 초야에 묻혀 지낸 뜻이 여기에 있지 않느냐고. 더불어 제 좋고 남 좋은 게 편안한 인생 아니겠냐고. 그래도 굳이 투쟁하려 들고 싶다면 그 잘난 폐인정신으로 어디 혼자 콕 처박혀 제 밥 적당히 빌어먹고 살 정도의 필살스킬 하나 연마하면 그만이라고.
그러나 그리 살면 무엇 하겠는가. 우습기도 하지. 아무 어려움 없이, 과자공장 기계가 찍어내는 크래커처럼 손쉽게 반죽되고, 똑같은 옷을 입고, 뚝딱 구워져 이내 부스러질 그저 비슷비슷한 인생살이. 수많은 인생 중 ‘일련번호 0000’의 작은 표딱지 하나로 유통되다 저리 안타깝게 폐기되고 말 것을. 나, 그간 죽어도 평범하길 원해왔으나 이제는 도통 내가 정한 노말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내일 평균치 이상의 식사를 할 수 있고, 모레 누군가에게 벌레보다 못한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보통’의 범주란 것은 상당히 가변적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타인의 지명도에 반비례한다. 가령 오른손잡이는 보통이다. 보통의 경우(아이러니하지만) 누군가 내게 ‘당신, 오른손잡이군요?’라고 물어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물어준다면, 나는 매우 기쁠 것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이미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니까. 마치 어린왕자의 장미 한 송이처럼.
이렇게 쓰고 보니 참으로 구태의연하지만, 나는 타인의 눈빛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일에 이미 넌덜머리가 난 상태이다. 나는 분명 모든 인생들에게 지나가는 에피소드 181이나 182쯤 될 것이다.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대로 묻혀가는 것이 억울하고 배알 꼴려 애드리브라도 치고 가야겠다. 기억되고 싶다.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소중한 사람으로 각인되고 싶다. 그러므로 좀 더 투쟁적으로 살아가련다. 치열하게, 누군가의 말대로 더 아파해 보기도 하면서…
‘내가 좋으면 됐지 무얼’ 하고 쓰레기 같은 삶에 만족하는 이들과 늘 불만투성이에 끊임없이 욕심만 부리는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겠다. 동시에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고 스스로 신해철이 되어 절규하겠다. 나, 축구는 헛발질에 바둑도 젬병이라 어깨 너머 눈알만 굴리고, 노래방에선 한껏 띄워놓은 분위기에 발라드 한 키 낮춰 부르는 대참사밖에 일으킬 줄 모르고, 술은 지지리 못하면서 진탕 마셔대다 꼴아박기 일쑤고, 인간관계 또한 그리 썩 좋지 못하며, 페이스나 경제적 여유, 무엇 하나 딱히 내세울 것 없는 못난 청년이지만, 그래, 나는 아직 젊으니까. 수없이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하니처럼 달리며 박카스를 벌컥벌컥 마셔댈 수 있으니까. 그게 청춘의 특권이니까.
순응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건 다 하련다. 부끄러움 없는 청춘, 실패 없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더 부끄러워하자. 더 많이 실패하자. 아자! 내 인생은 이제 막 마알갛게 떠오르는 현재 진행형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최세훈'님은?
20대 청년. 고려대 재학. 제 잘난 맛에 사는 독서가.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전진하고 있다.